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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어장터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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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어장터만세운동

1938년 당시 계양산과 마을 전경 이미지

1938년 당시 계양산과 마을 전경 이미지

잉어의 산지라 기명하여 그 이름이 붙여진 황어장터는 5일장으로 조선시대부터 잡화 및 곡물뿐만 아니라 1일 200여 두의 거래가 이루어진 소시장으로 이름이 난 곳이다. 1910년대에는 더욱 확장되어 1일 소거래량이 500~600두에 이르렀으며 이용주민이 1,000명에 달하는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시장이었다. 더욱이 이곳은 3.1운동 당시 장날을 이용하여 수백 명이 만세운동을 일으켜 인천지역에서 가장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되었으며 강서지방에서 최초의 만세운동로 전해지고 있다.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한민족은 국내외에서 조선의 독립을 외치는 거족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계양주민들도 3월 24일 오후 2시경 오류리의 심혁성의 주도하에 장기리 황어장터 장날을 이용하여 6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

황어장터의 만세운동은 인천지역에서 전개된 가장 대규모적인 만세운동이었으므로 당황한 일제는 심혁성을 체포하는 한편 이의 진압에 적극 나섰다. 이에 장기리의 임성춘 등 주민 600여명은 만세운동과 더불어 체포되어 가는 심혁성의 탈환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부내 경찰관 주재소 일본순사는 칼을 빼어 휘둘러 선봉에 섰던 선주리의 이은선을 즉사케 하고 윤해영에게 부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이은선의 피살 소식이 전해지자 이담, 최성옥, 전원순, 이공우 등 천도교인, 기독교인, 일반 농민 등이 주축이 되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한편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자 하였다. 격분한 계양주민 100여명은 우선 선주지리에 있는 면사무소 서기 이경응이 친일적인 협의가 있다고 보아 그의 집으로 달려가 집을 부수어 민족정기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으며 주민들을 억압 탄압하던 면사무소를 파괴하여 친일기관을 응징하고자 하였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계양주민 40여명은 3.1운동을 전개하였다는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으며, 그 중 이담은 징역 2년, 임성춘은 징역 1년, 최성옥과 전원순은 각각 징역 10월, 심혁성은 징역 8월에 처해졌다. 당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심혁성(오류동)은 1년여의 옥고를 치루고 논과 밭 그리고 집을 팔아 생필품을 장만하여 장터에서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처자를 거느리고 산골로 은신, 전국 심산유곡을 30년 가까이 방랑하며 약초를 캐어 연명하면서 한편으로는 만주 등지를 내왕 애국지사들과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그 외에도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33인의 일부 후손들이 아직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황어장터의 만세운동은 계양 주민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자긍심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천지역, 나아가 전국의 만세운동에도 견인차 역할을 전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황어장터 만세운동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애국지사들은 다음과 같다. (가나다 순)

김영권, 김창열, 박문칠, 배응준, 송광현, 심혁성, 안윤필, 유석기(유연봉), 윤해영, 이공우, 이금산, 이담(이태현), 이은선, 이태완, 임성일, 임성춘, 임창현, 전기순, 전봉학, 전사삼, 전상근, 전원순, 전천능, 정태용, 조성칠, 채귀현, 채규명(채상현), 채봉운, 채봉혁, 채흥봉, 최성옥, 최청일, 홍여선,

< 연 구 >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 환

황어장터 만세운동 재현 공연 사진

황어장터 만세운동 재현 공연 포토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현황

심혁성(深爀誠)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심혁성 정보
생존기간 1888.8.15~1958.12.14
훈격(연도) 건국훈장 애족장(1990)
주소 오류리 22
공적사항 부천군 계양면(桂陽面) 오류리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전국 각지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같은 면내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부천군에서는 제일 먼저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계양면 장기리(場基里) 장터에서 주동이 되어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이곳을 경계하고 있던 일경에 의해 현장에서 주동자로 피체되었다. 그가 피체된 후에도 군중은 그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만세시위를 계속하였고, 이 만세운동은 각 면으로 확산되어갔다. 그는 이해 10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훼방·직무집행방해죄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11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 3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임성춘(林聖春)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임성춘 정보
생존기간 1869.3.25 ~ 1937.7.15
훈격(연도) 건국훈장 애족장(1990)
주소 장기리 81
공적사항 1919년 3월 24일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桂陽面 場基里) 장날을 이용하여 심혁성(沈爀誠)·이담·최성옥(崔成玉)·전원순(全元順) 등과 독립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2시 장기리 장터에서 3백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는데, 부내(富內) 경찰 주재소에서 이궁희삼차(二宮喜三次) 등 4명의 일본인 순사가 선두에 서서 지휘하던 심혁성을 체포하였다. 이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순사를 포위하고 심혁성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구타하여, 심혁성을 풀어주게 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이 해 11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훼기(毁棄)·직무집행 방해·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원순(全元順)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전원순 정보
생존기간 1874.9.3 ~ 1945.6.8
훈격(연도) 건국훈장 애족장(1990)
주소 이화리 223
공적사항 부천군 계양면 이화리(桂陽面 梨花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조국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중 3·1독립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자 그 취지에 적극 찬동하여 심혁성(沈爀誠)·임성춘(林聖春) 등과 함께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장기리(場基里) 장터에서 3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대열을 선도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이해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아 1년 2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은선(李殷先)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이은선 정보
생존기간 1876.2.8 ~ 1919.3.24
훈격(연도) 건국훈장 애족장(1991)
주소 선주지리
공적사항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富川郡桂陽面場基里) 장날을 이용하여 심혁성(沈爀誠)·이 담(李담)·최성옥(崔成玉)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2시 장기리 장터에서 3백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부내(富內) 경찰 주재소에서 이궁희삼차(二宮喜三次) 등 4명의 일본인 순사가 주동자 심혁성을 체포하였다. 이에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순사를 포위하고 심혁성을 풀어 줄 것을 요구하며, 일경을 구타하여 심혁성을 도망치게 하였다. 이 때 일본인 순사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차고 있던 칼로 선두에 있던 그를 찔러 현장에서 죽게하였다. 그러나 그의 순국은 장기리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더욱 격렬하게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담(李潭)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이담 정보
생존기간 1879.4.17 ~ 1955.1.30
훈격(연도) 건국훈장 애족장(2005)
주소 다남리 98
공적사항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계양면(桂陽面) 장기리(場基里) 장터에는 심혁성(沈爀誠) 등의 주도로 2백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때 부내(富內) 경찰관주재소에서 4명의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심혁성을 연행하려 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군중은 순사들에게 항의하며 심혁성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이를 틈타 심혁성은 포승을 풀고 도망하였다. 순사들이 그를 추격하려 하자 군중들은 순사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돌을 던지며 대항하였다. 그러자 다급해진 일본 순사는 칼을 빼들고 무력진압에 나섰다. 이로 인하여 시위대의 앞에 있던 이은선(李殷先)이 일경이 휘두른 칼에 찔려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담은 이은선과 6촌 관계였다. 그는 면사무소에서 거적에 싸여 있는 이은선의 시신을 확인하고 이를 일본 경찰에게 따지기 위해 계양면장 안병혁(安柄赫)과 면서기 이경응(李敬應)에게 부탁하여 동리 사람들을 밤 12시에 면사무소로 모이도록 하는 통문을 만들어 돌렸다. 이에 따라 밤 12시, 2백여 명의 면민들이 면사무소에 모였다. 그런데 면사무소 수석 서기인 이경응이 나오지 않자 군중들은 ‘그가 범한 죄가 있어서 여기에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그의 집을 부숴버리자’고 하였다. 그가 모친의 병환을 핑계로 나오지 않은 이경응의 집으로 가 사실을 확인하니 집에서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면사무소로 돌아와 분노한 군중과 함께 선주지리(仙住地里)에 살고 있는 이경응의 집으로 달려가 군중들에게 집을 파괴하라고 부르며 솔선하여 그 집의 대문과 벽을 부수었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성옥(崔成玉)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최성옥 정보
생존기간 1872.1.1 ~ 1929.8.31
훈격(연도) 건국포장(2005)
주소 이화리 248
공적사항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계양면(桂陽面) 장기리(場基里) 장터에는 심혁성(沈爀誠) 등의 주도로 2백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때 부내(富內) 경찰관주재소에서 니노미야 키소지[二宮喜三次] 등 4명의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심혁성을 연행하려 하였다. 이에 분노한 시위군중은 순사들에게 대들며 심혁성의 석방을 격렬히 요구하였다. 이를 틈타 심혁성은 포승을 풀고 도망하였다. 순사들이 그를 추격하려 하자 군중들은 순사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돌을 던지며 거세게 대항하였다. 그러자 다급해진 일본 순사는 칼을 빼들고 무력진압에 나섰다. 이로 인하여 시위대 앞에 있던 이은선(李殷先)이 일경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 밤 이은선의 6촌인 이담(李)은 이를 분하게 여겨 계양면장 안병혁(安柄赫)과 면서기 이경응(李敬應)에게 부탁하여 동리 사람들에게 밤 12시에 면사무소로 모이도록 알리는 통문을 만들어 돌렸다. 이에 따라 밤 12시 2백여 명의 면민들이 면사무소에 모였다. 이때 최성옥도 이 연락을 받고 면사무소로 갔다. 그런데 이경응이 나오지 않자 군중들은 ‘그가 범한 죄가 있어서 여기에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그의 집을 부숴버리자’고 하였다. 그는 분노한 군중들과 함께 선주지리(仙住地里)에 살고 있는 이경응의 집으로 달려가 그 집의 대문과 벽을 부수며 격렬히 항쟁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과 소요·훼기·직무집행방해 등으로 징역 10월(미결구류 90일 통산)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당하고 결국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임창현(林昌鉉)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임창현 정보
생존기간 1883.2.16 ~ 1938.2.28
훈격(연도) 대통령표창(2018)
주소 선주지 105
공적사항 1919년 3월 24일 京畿道 富川郡 桂陽面 場基里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沈爀誠의 체포를 저지하려다 숨진 李殷先의 사인 규명과 만행규탄 회합에 참석하지 않은 면사무소 서기의 집을 파괴하는데 참여한 혐의로 체포되어 免訴 처분을 받음.

이공우(李公雨)

황어장터 만세운동 독립유공자 이공우 정보
생존기간 1876.11.15 ~ 1954.11.6
훈격(연도) 대통령표창(2018)
주소 이화 248
공적사항 1919년 3월 24일 경기도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심혁성의 체포를 저지하려다 숨진 이은선의 사인 규명과 만행규탄 회합에 참석하지 않은 면서기를 응징하다 체포되어 벌금 20원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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